Review

물안개에 잠긴 돌과 불투명한 대기 속에서 희미해진 풀잎들, 흐릿한 하늘 아래에서 출렁이는 우듬지, 모든 것이 꿈꾸듯이 어렴풋하다.

조인증의 작품에는 야생의 자연을 원초적이며, 계시적이고, 변신의 힘이 충만한 대상으로 보는 낭만적인 의도가 내재되어 있다.

그는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35mm 대신 파노라마 포맷을 택하면서 사진적인 이미지로부터 탈피하여 순간을 포착하기 보다 필사본을 관조하는 듯 자연이 가지고 있는 은은한 어두움을 강렬한 회화적 분위기로 만들어낸다.
 
그의 사진작업은 디지털기법을 배제하고 필름을 사용하여 고전적인 방법을 고수하고 있으며, 한지를 인화지로 사용함으로써 그의 흑백 작업은  빛의 농담을 능숙하고 농밀하게 다루고 있다.

이는 17세기 한국의 회화기법인 "진경산수화" -자연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 의 전통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할 수 있다. 

분단 국가인 한국에서 역사의 질곡과 부침을 겪은 작은 섬 제주도. 그의 사진은 한국특유의 집단적 감정인 '한' 이라는 틀 안에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리라.

치유되지 않은 울분, 고통, 슬픔, 분노, 이러한 정서는 제주라는 한국의 명소에 대한 지형적인 우수성 뿐 아니라 그 풍경에 내재되어 있는 심리적이고 미술사적인 의미와 단층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데 필요한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하루의 햇살을 담은 회색빛 적막함, 젖어있는 무게감, 작은 폭포소리, 흔들리는 시간과 공간.
그의 작품은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경이로운 축복인 동시에 고통을 내포한 축복일지도 모른다.


                              푸쉬킨 미술관 사진 역사 학자
                                              다리아 파나이오티